[중앙일보 배명복] 중앙일보 중동 특파원인 서정민 기자가 며칠 전 책을 냈다. '두바이, 무한 상상력과 창조적 리더십'(글로연 간)이다. 300쪽 가까운 분량의 책을 잡자마자 끝까지 다 읽었다. 소설도 아닌 책이 이토록 강력한 흡인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이 놀랍다.
황량한 사막에 천지개벽의 조화를 이루어낸 두바이의 기적은 더 이상 뉴스는 아니다. 이미 언론에 소개될 만큼 소개됐고, 직접 가서 본 사람도 많다. 서 특파원이 주목한 것도 두바이의 기적 자체는 아니다. 10년 만에 아라비아 반도의 작은 토후국을 사람과 돈과 기술이 몰리는 최첨단 글로벌 허브로 바꿔놓은 원동력이 과연 무엇인가에 그는 천착했다.
국경 없는 경쟁 시대를 맞아 각국은 총성 없는 전쟁을 하고 있다. 경제전쟁이다. 이 책의 추천사에서 강신장 삼성경제연구소 지식경영센터장은 "경제전쟁에서 단시간에 극적으로 승리하는 비결은 남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경제전쟁의 진짜 이름은 '상상력 전쟁'이라는 것이다.
두바이는 '아라비안 나이트'의 스토리와 판타지를 잉태한 상상력으로 전대미문(前代未聞)의 프로젝트와 이벤트를 만들어냄으로써 사람들의 혼을 쏙 빼놓는 매혹적인 '신기루'를 펼쳐놓았다. 최고 지도자인 셰이크 무하마드 자신이 '최고 상상 책임자(Chief Imagination Officer)'로서 상상과 환상의 경연을 이끌었고, 그 결과는 세계 각국에서 유치한 2000여 명의 초일류 브레인들의 손길을 거쳐 눈에 보이는 구체적 현실이 됐다. '두바이안 나이트(Dubaian Night)'의 탄생이다.
제주도의 두 배에 불과한 작은 면적. 섭씨 50도를 오르내리는 열사의 땅. 약간의 석유를 제외하면 부존자원이라고는 없는 불모지. 이런 악조건 속에서 그들은 층수조차 베일에 가린 세계 최고층 빌딩을 짓고, 바다에는 세계 최대의 인공섬과 수중호텔, 사막에는 스키장, 해안에는 세계 최초의 7성급 호텔을 건설했다. 셰이크 무하마드는 변방의 약소국에 불과한 두바이지만 남다른 상상력을 발휘하면 '작지만 강한 나라'가 될 수 있다는 비전을 제시했고, 약점을 기회로 활용하는 역발상, 시(詩)적인 상상력, 인습과 관행에 얽매이지 않는 실용적 리더십으로 신화를 창조했다.
열강에 둘러싸인 한반도의 지정학적 운명도 시각을 바꾸면 축복이 될 수 있다. 한반도에 서서 태평양을 바라보면 서해와 동해는 우리의 내해(內海)이고, 동중국해는 대양으로 가는 길목이다. 내해 양편에는 거대한 인구와 시장이 있고, 배후에는 광대한 대륙이 있다. 인천공항을 중심으로 반경 2000km의 원을 그리면 그 안에 인구 100만 명 이상의 도시 43개가 들어온다. 내해권 인구만 6억 명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동북아 중심국가론을 핵심 공약 중 하나로 내세운 것 자체는 옳은 선택이었다. 지정학적 핸디캡을 기회로 활용한다는 발상의 대전환이었다. 하지만 이 공약은 집권 4년 만에 흐지부지돼 '공약(공약)'이 되고 말았다. 주변국의 반발 때문에 동북아 중심국가는 동북아 경제중심국가로 슬그머니 바뀌더니 동북아 물류.금융 허브를 거쳐 글로벌 물류 네트워크로 변질됐다. 용의 머리를 그리려다 뱀의 꼬리를 그리고 만 꼴이다. 만신창이 사산아가 된 동북아 균형자론에서 보듯이 실리와 명분을 구별하지 못한 채 공허한 구호만 앞세웠기 때문이다. 비전도, 상상력도 받쳐주지 못했다.
문제는 리더십이다. 매력적이고 역동적인 코리아, 동북아의 허브가 되는 코리아를 만드는 것은 상상력이 뒷받침된 실용적 리더십에 달려 있다. 연탄수레를 끌고, 시장바닥이나 누비고 다니는 리더십에서 그런 상상력은 나올 수 없다. 내년 대선은 꿈과 희망을 주는 리더를 뽑는 선거가 돼야 한다. 선택에 따른 비용은 이미 치를 만큼 치렀다. 더 이상 우리에겐 실패할 여유가 없다. 리더를 꿈꾼다면 두바이의 상상력을 배우라.
배명복 논설위원 겸 순회특파원 ▶배명복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com/bmb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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